분류
WhiteStarline GROUP 백성선크리-닝주식회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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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일 | 1912년 4월 14일(1차) 1922년 2월 22일(2차) |
업종 | 위생, |
회장 | |
1. 개요 [편집]
랜드해협 세?계관의 기업.
2. 역사 [편집]
화이트스타라인(WhiteStarline Group)의 기원은 1888년, 조선 천주부 파주군의 외딴 마을에서 태어난 김국자라는 인물에게서 비롯된다. 김국자는 중성적 성향의 인물로, 청소년기부터 타고난 언변과 손재주로 주변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어린 나이부터 사람들을 설득하고 조직하는 능력이 탁월해,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방식으로 경영에 뛰어들게 되었다.
1912년 4월 14일, RMS 타이타닉이 침몰한 그날 김국자는 그의 패거리 제갈시훈, 박애두와 함께 ‘백성선크리닝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피주군청을 무단으로 점거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이는 당시 군수와의 개인적 친분에 힘입은 것이며, 그를 통해 지역 내에서 독점적 청소 용역을 수행하는 기업으로 빠르게 성장하게 되었다. 백성선크리닝은 청소업뿐 아니라, 1913년부터는 개성군에 공장을 차리고(현 개성공단) 모형 항공기 제작 사업에도 진출하여 ‘드륌-라이나’ 시리즈라는 공상적 디자인의 모형 비행기로 수익을 창출. 전국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회사의 급격한 성장 속에는 사기와 기만적 행위가 뒤따랐다. 1913년 10월 23일, 전국의 문맹 농민들을 대상으로 한 ‘락샤스 투자사기 사건’은 대표적인 예다. 당시 김국자는 ‘6974m짜리 마천루’ 건설을 약속했으나, 실제로는 단지 6974mm에 불과한 순두부 가게를 세웠고, 막대한 투자 손실을 초래했다. 이에 분노한 농민들이 전국에서 몰려와 무장봉기를 일으키면서 김국자는 천주를 떠나야 했다.
그 무렵 일본 제국은 항공 기술의 발전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김국자의 항공기 사업에도 주목하고 있었다. 조선총독부는 김국자를 보호하며 그를 아마노 히나로 창씨개명 후 본도로 소환. 미쓰비시 항공부에다 앉혀두고 부려먹으려 했다.
하지만 거짓말로 이뤄진 성공에는 결국 한계가 있었으니 때는 1914년 7월 10일. 미쓰비시에서의 뉴 라이푸를 위해 자신이 설계할때 2,000ft 이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구라친 항공기를 타고 열도로 가던 중 조종사가 진짜로 2,000ft 상공으로 올라가버려 엔진이 빙결. 그대로 동해에 추락해버리는 괴기한 사고를 겪게 된다. 조종사는 명을 달리했지만 아마노 히나 본인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고 이후 지나가던 독일 동방함대[1]경비정에게 구조되었다.[2]
당시 일본과 독일은 적국. 그것도 그는 성깔이 매우 에바스러운 편이었기에 그를 발견한 독일 황립 해군의 수병들은 건지자마자 바로 던져버리려 했지만 함에 타고있던 NEDP 난징지사 직원의 설득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후 며칠뒤 발발한 도스시 전투에서 독일이 패하고 도르스 조차지가 일본에게 정복당하자 그는 어쩔 방도도 업었기에[3] 다른 수병들과 함께 독일로 건너가게 되었다. 독일로 넘어간 후 그는 제갈시훈, 박애두[4]와 만나 1922년 2월 22일 백성선공업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
머나먼 이국땅 라인란트 지방에 터를 잡은 그는 열등한 황인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융커 계층과의 빠른 유착관계 정립으로 백성선 AG는 창업 몇개월만에 독일 최고의 청소업체로 성장할 수 있었다. 당시 그는 정치적 인맥 형성을 위해[5] 설립 초창기의 나치당에도 입당했는데, 특히 당수 아돌프 히틀러와의 모종의 딥한 관계로 악명이 높았다. 백성선공업은 이후 뮌헨 폭동 당시 히틀러의 수감으로 위기에 빠진 나치당에 상당수의 정치자금을 투입해 살려냈고, 이는 훗날 퓌러의 집권에 큰 영향을 미쳤다.[6]
이제 전 독일을 먹은 그의 목표는 세계를 자신의 손아귀에 두는 것이었다. 가장 먼저 미주 공략을 위해 그는 미제국으로 손수 건너가 이름을 디퍼 록하트 레이튼(Dipper 'Lockhart' Layton)으로 개명하고, 시카고(신천주)[7]에 ‘화이트스타라인 그룹’이라는 명의로 지사를 건립했다. 그는 타이타닉 호 침몰의 상징성을 마케팅에 이용하고자 했으나, 상표권 분쟁 끝에 경쟁사를 테러한 혐의로 비난받았다. 이후 본업인 청소 하청업에 집중하며 당시 대공황에 휘청이던 경쟁자들을 모조리 재패하고 미국 내에서 점차 입지를 넓혔으며 경쟁자 NEDP를 압살하고 한때 미국 청소업계 순위 22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대공황과 함께 그의 휘황찬란한 꿈은 가루가 되었다. 마치 나이아가라 폭포와도 가튼 주가의 대폭락으로 인해 그는 계열사 4개와 독일, 영국지사. 뉴멕시코 지하시설(훗날 제2신동경시)을 NEDP에 매각해야만 했다. 여기까진 그나마 좀 무너지긴 했어도 버틸 수 있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그의 찬일 + 나치 활동 이력이 알려지면서[8] 기업의 이미지와 매출은 급락했고, 김국자는 1942년 또다시 도산 위기를 맞게 되었다. 결국 1943년 7월 17일 지속된 임금채불이 원인이 되어 일어난 시카고 폭동으로 분노한 민중들에게 본사는 마구 약탈당해 불태워졌고 대부분의 직원이 사표를 내 그룹은 실상 좀비상태가 되버렸다. 본사와 디트로이트 공장이 폭파된 이후에도 마피아들의 빚독촉에 시달리던 그는 죽음을 가장해 앨빈 카휜트리 욕크(Albyn Cahentry York)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신분을 세탁하고 성형수술을 받은 뒤 웨스타시아로 도피하였다.
김국자가 행방을 감춘 이후, 회사는 심각한 부채를 안은 채 방치되었지만, 1945년 NEDP Inc.가 이를 인수하면서 회생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NEDP는 화이트스타라인의 브랜드를 유지하면서도 본래의 청소업을 넘어서 게임, 식품,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였다.
한편 웨스타시아에 은신한 김국자는 과거 독일에서 쌓은 인맥을 활용하여 현지에서 군사 쿠데타를 계획하고 있었으며, 이는 훗날 웨스타시아의 정치 지형을 뒤흔드는 사건으로 이어지게 된다.
1912년 4월 14일, RMS 타이타닉이 침몰한 그날 김국자는 그의 패거리 제갈시훈, 박애두와 함께 ‘백성선크리닝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피주군청을 무단으로 점거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이는 당시 군수와의 개인적 친분에 힘입은 것이며, 그를 통해 지역 내에서 독점적 청소 용역을 수행하는 기업으로 빠르게 성장하게 되었다. 백성선크리닝은 청소업뿐 아니라, 1913년부터는 개성군에 공장을 차리고(현 개성공단) 모형 항공기 제작 사업에도 진출하여 ‘드륌-라이나’ 시리즈라는 공상적 디자인의 모형 비행기로 수익을 창출. 전국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회사의 급격한 성장 속에는 사기와 기만적 행위가 뒤따랐다. 1913년 10월 23일, 전국의 문맹 농민들을 대상으로 한 ‘락샤스 투자사기 사건’은 대표적인 예다. 당시 김국자는 ‘6974m짜리 마천루’ 건설을 약속했으나, 실제로는 단지 6974mm에 불과한 순두부 가게를 세웠고, 막대한 투자 손실을 초래했다. 이에 분노한 농민들이 전국에서 몰려와 무장봉기를 일으키면서 김국자는 천주를 떠나야 했다.
그 무렵 일본 제국은 항공 기술의 발전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김국자의 항공기 사업에도 주목하고 있었다. 조선총독부는 김국자를 보호하며 그를 아마노 히나로 창씨개명 후 본도로 소환. 미쓰비시 항공부에다 앉혀두고 부려먹으려 했다.
하지만 거짓말로 이뤄진 성공에는 결국 한계가 있었으니 때는 1914년 7월 10일. 미쓰비시에서의 뉴 라이푸를 위해 자신이 설계할때 2,000ft 이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구라친 항공기를 타고 열도로 가던 중 조종사가 진짜로 2,000ft 상공으로 올라가버려 엔진이 빙결. 그대로 동해에 추락해버리는 괴기한 사고를 겪게 된다. 조종사는 명을 달리했지만 아마노 히나 본인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고 이후 지나가던 독일 동방함대[1]경비정에게 구조되었다.[2]
당시 일본과 독일은 적국. 그것도 그는 성깔이 매우 에바스러운 편이었기에 그를 발견한 독일 황립 해군의 수병들은 건지자마자 바로 던져버리려 했지만 함에 타고있던 NEDP 난징지사 직원의 설득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후 며칠뒤 발발한 도스시 전투에서 독일이 패하고 도르스 조차지가 일본에게 정복당하자 그는 어쩔 방도도 업었기에[3] 다른 수병들과 함께 독일로 건너가게 되었다. 독일로 넘어간 후 그는 제갈시훈, 박애두[4]와 만나 1922년 2월 22일 백성선공업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
머나먼 이국땅 라인란트 지방에 터를 잡은 그는 열등한 황인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융커 계층과의 빠른 유착관계 정립으로 백성선 AG는 창업 몇개월만에 독일 최고의 청소업체로 성장할 수 있었다. 당시 그는 정치적 인맥 형성을 위해[5] 설립 초창기의 나치당에도 입당했는데, 특히 당수 아돌프 히틀러와의 모종의 딥한 관계로 악명이 높았다. 백성선공업은 이후 뮌헨 폭동 당시 히틀러의 수감으로 위기에 빠진 나치당에 상당수의 정치자금을 투입해 살려냈고, 이는 훗날 퓌러의 집권에 큰 영향을 미쳤다.[6]
이제 전 독일을 먹은 그의 목표는 세계를 자신의 손아귀에 두는 것이었다. 가장 먼저 미주 공략을 위해 그는 미제국으로 손수 건너가 이름을 디퍼 록하트 레이튼(Dipper 'Lockhart' Layton)으로 개명하고, 시카고(신천주)[7]에 ‘화이트스타라인 그룹’이라는 명의로 지사를 건립했다. 그는 타이타닉 호 침몰의 상징성을 마케팅에 이용하고자 했으나, 상표권 분쟁 끝에 경쟁사를 테러한 혐의로 비난받았다. 이후 본업인 청소 하청업에 집중하며 당시 대공황에 휘청이던 경쟁자들을 모조리 재패하고 미국 내에서 점차 입지를 넓혔으며 경쟁자 NEDP를 압살하고 한때 미국 청소업계 순위 22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대공황과 함께 그의 휘황찬란한 꿈은 가루가 되었다. 마치 나이아가라 폭포와도 가튼 주가의 대폭락으로 인해 그는 계열사 4개와 독일, 영국지사. 뉴멕시코 지하시설(훗날 제2신동경시)을 NEDP에 매각해야만 했다. 여기까진 그나마 좀 무너지긴 했어도 버틸 수 있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그의 찬일 + 나치 활동 이력이 알려지면서[8] 기업의 이미지와 매출은 급락했고, 김국자는 1942년 또다시 도산 위기를 맞게 되었다. 결국 1943년 7월 17일 지속된 임금채불이 원인이 되어 일어난 시카고 폭동으로 분노한 민중들에게 본사는 마구 약탈당해 불태워졌고 대부분의 직원이 사표를 내 그룹은 실상 좀비상태가 되버렸다. 본사와 디트로이트 공장이 폭파된 이후에도 마피아들의 빚독촉에 시달리던 그는 죽음을 가장해 앨빈 카휜트리 욕크(Albyn Cahentry York)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신분을 세탁하고 성형수술을 받은 뒤 웨스타시아로 도피하였다.
김국자가 행방을 감춘 이후, 회사는 심각한 부채를 안은 채 방치되었지만, 1945년 NEDP Inc.가 이를 인수하면서 회생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NEDP는 화이트스타라인의 브랜드를 유지하면서도 본래의 청소업을 넘어서 게임, 식품,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였다.
한편 웨스타시아에 은신한 김국자는 과거 독일에서 쌓은 인맥을 활용하여 현지에서 군사 쿠데타를 계획하고 있었으며, 이는 훗날 웨스타시아의 정치 지형을 뒤흔드는 사건으로 이어지게 된다.
[1] 독일령 도르스만 조차지(현 산둥성 도쑤시)를 모항으로 삼던 함대였다.[2] 당시 추락한 항공기 L6M은 미쓰비시와 합작으로 만든 수송기였는데, 미쓰비시 측에도 책임을 피할 수 업는 상황이 오자 설계도를 보지도 않았던 이즈미 코나타 주임을 짤랐다. 이에 앙심을 품은 그녀는 히타치광산 제작소에서 일하던 오다이라 나미헤이(히타치사 창업주)의 도움을 받아 하타치중공을 설립하게 된다.[3] 자신이 설계한 항공기가 추락한 이상 열도로 돌아가도 숙청당할게 뻔했다.[4] 니뽕의 구조 -> 만철(남만주철도회사) 임원 -> 딮제뱅기 타다 중화민국에 떨어짐 -> 포로 -> 주독일 군사고문단에 눈에 뙴 -> 독일로 귀화 루트를 밟았다.[5] 사실 당시의 나치당은 설립 초기의 친목모임에 가까웠던 것이라 전혀 정치적 인맥형성에 도움이 안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구욷이 나치당에 가입한 그의 심리는 현재까지도 역사의 빈 페이지로 남아있다.[6] 당시 그가 청소업체용 살충제 목적으로 만들었던 ‘치클론 B’는 이후 나치의 대학살에 악용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다만 이 또한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의 공?적을 가로챘다는 의혹이 존재한다.[7] 천주 = 하늘의 주인 = 바람 = 시카고의 애칭 (The Windy City) 논리라고 추측된다.[8] 포드, GM등 전쟁 전부터 나치에 협력하고 있었던 미제 대기업들의 죄도 덤터기 썼다.
